'샘이 숨은 사찰' 천은사의 숨은 이야기를 상상해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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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이 숨은 사찰' 천은사의 숨은 이야기를 상상해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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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이 숨은 사찰' 천은사의 숨은 이야기를 상상해봤습니다- 이전 기사 '천은사 기둥에 매달린 멧돼지, 무슨 뜻이게요?'에서 이어집니다.천은사 기둥에서 내려온 멧돼지, 팔상전 마당에 서다 ▲ 지리산천은사복바위ⓒ 이완우극락보전 뒤에 있는 팔상전 마당에는 지리산 여신의 자애로움으로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큼직한 복돼지 바위가 웅크리고 있다. 극락보전의 기둥을 내려온 멧돼지가 팔상전 앞으로 가서 바위로 변했다고 한다. 지리산 노고 여신의 넉넉한 자애로움이 이 복바위에 영험을 더해, 찾아온 사람들이 소원을 빌면 잘 들어준다고 한다. 복바위 위에 복과 지혜를 나눠준다는 포대 화상 조각을 올려놓았다.이어 응진전 안에서 독창적인 문양의 용 형상을 발견했다. 동자가 용을 타고 하늘을 날고 있다. 용의 날개가 물고기 지느러미 같다. 용이면서 하늘을 나는 배와 같고 물고기 이미지가 풍긴다. 17세기 말에 편찬된 남원의 향토 읍지인 용성지(龍城誌)에 감로사에 대한 기록이 있다."甘露寺 在所義坊東 智異山南 俗稱天彦寺 有甘泉 故名甘露(감로사 재소의방동 지리산남 속칭천언사 유감천 고명감로 : 감로사는 남원부의 소의방 동쪽 지리산 남쪽에 있다. 세인들은 천언사라고 한다. 달콤한 샘물이 있어서 감로라 이름한다)" ▲ 지리산천은사ⓒ 이완우조선 시대에 지리산 천은사는 남원의 가장 큰 사찰이었다. 남원 부사가 지리산 산신제인 남악제를 주관하였다. 지리산 지역을 답사하며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고 있는 지리산권 마실(협동조합) 조용섭 이사장이 말했다."대한제국기 통감부 시기인 1906년에 월경지·두입지를 정리하면서, 남원부 소의면, 산동면(내산면, 외산면), 중방면, 고달면이 전남 구례로 편입되었어요. 용성지 편찬 당시 파근암, 황령암, 수도암 등 7개의 속암을 두었고, 비록 폐사 되었으나 묘봉암 등 9개의 암자가 속암으로 기록된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천은사는 조선시대에 남원을 대표했던 거찰이었지요."고려 시대에도 감로사(천은사)는 남원 지리산권의 세력 있는 사찰이었다. 고려 충렬왕(1236~1308)은 감로사를 '南方題一禪刹(남방제일선찰)'이라고 이 사찰의 격을 한층 높여주었다. 6세기 백제 성왕(504?~554)의 사비 시대에 남원은 지리산 권역을 지배하는 백제의 남방성(南方城)이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백제 땅이었으며 가야 세력의 거점이었던 지리산 지역을 오악 중에 남악으로 지정했고, 남원을 남원경으로 오소경(五小京)의 하나로 삼았다.구례 천은사는 백두대간인 노고단 가까운 차일봉 아래 깊은 계곡에 자리한다. 노고단에서는 신라 시대'샘이 숨은 사찰' 천은사의 숨은 이야기를 상상해봤습니다- 이전 기사 '천은사 기둥에 매달린 멧돼지, 무슨 뜻이게요?'에서 이어집니다.천은사 기둥에서 내려온 멧돼지, 팔상전 마당에 서다 ▲ 지리산천은사복바위ⓒ 이완우극락보전 뒤에 있는 팔상전 마당에는 지리산 여신의 자애로움으로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큼직한 복돼지 바위가 웅크리고 있다. 극락보전의 기둥을 내려온 멧돼지가 팔상전 앞으로 가서 바위로 변했다고 한다. 지리산 노고 여신의 넉넉한 자애로움이 이 복바위에 영험을 더해, 찾아온 사람들이 소원을 빌면 잘 들어준다고 한다. 복바위 위에 복과 지혜를 나눠준다는 포대 화상 조각을 올려놓았다.이어 응진전 안에서 독창적인 문양의 용 형상을 발견했다. 동자가 용을 타고 하늘을 날고 있다. 용의 날개가 물고기 지느러미 같다. 용이면서 하늘을 나는 배와 같고 물고기 이미지가 풍긴다. 17세기 말에 편찬된 남원의 향토 읍지인 용성지(龍城誌)에 감로사에 대한 기록이 있다."甘露寺 在所義坊東 智異山南 俗稱天彦寺 有甘泉 故名甘露(감로사 재소의방동 지리산남 속칭천언사 유감천 고명감로 : 감로사는 남원부의 소의방 동쪽 지리산 남쪽에 있다. 세인들은 천언사라고 한다. 달콤한 샘물이 있어서 감로라 이름한다)" ▲ 지리산천은사ⓒ 이완우조선 시대에 지리산 천은사는 남원의 가장 큰 사찰이었다. 남원 부사가 지리산 산신제인 남악제를 주관하였다. 지리산 지역을 답사하며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고 있는 지리산권 마실(협동조합) 조용섭 이사장이 말했다."대한제국기 통감부 시기인 1906년에 월경지·두입지를 정리하면서, 남원부 소의면, 산동면(내산면, 외산면), 중방면, 고달면이 전남 구례로 편입되었어요. 용성지 편찬 당시 파근암, 황령암, 수도암 등 7개의 속암을 두었고, 비록 폐사 되었으나 묘봉암 등 9개의 암자가 속암으로 기록된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천은사는 조선시대에 남원을 대표했던 거찰이었지요."고려 시대에도 감로사(천은사)는 남원 지리산권의 세력 있는 사찰이었다. 고려 충렬왕(1236~1308)은 감로사를 '南方題一禪刹(남방제일선찰)'이라고 이 사찰의 격을 한층 높여주었다. 6세기 백제 성왕(504?~554)의 사비 시대에 남원은 지리산 권역을 지배하는 백제의 남방성(南方城)이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백제 땅이었으며 가야 세력의 거점이었던 지리산 지역을 오악 중에 남악으로 지정했고, 남원을 남원경으로 오소경(五小京)의 하나로 삼았다.구례 천은사는 백두대간인 노고단 가까운 차일봉 아래 깊은 계곡에 자리한다. 노고단에서는 신라 시대 이래로 산신 제단에 노고 여신을 제사하였다. 남원 용성지에 감로사(천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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