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품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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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품 있는 사람

송지혜 0 877


수준이나 등급을 나타내는 ‘품(品)’이라는 한자를 보면 입 ‘구(口)’ 세 개가 쌓인 형태다. 그러고 보면 사람도 말이 쌓이고 쌓여 그 사람의 인격이 되고 품성이 된다. 내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나의 품격이 드러난다. 아무리 그 품격을 숨기려 해도 금세 탄로 나는 까닭은 말이라는 게 단지 입의 창조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은 마음속에서 자라고 몸과 얼굴 눈빛을 거쳐 입에서 열매 맺는다. 때로는 칼처럼 날카롭게 때로는 악취 가득한 폐수처럼 말이 만들어진다. 그러고는 타인의 귀를 타고 들어가 마음 밭에 씨앗처럼 떨어진다. 그러니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기도 하고 대역 죄인이 되기도 한다는 옛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다.

요즘 시대도 다르지 않다. 달변가와 능변가가 대접받는 시대다. 말이란 흉내 낸다고 될 일이 아니다. 말하기가 한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다 보니 모두 앞다퉈 영향력 있는 말쟁이 글쟁이가 되려 한다.

하지만 모든 힘은 밖으로 향하는 동시에 안으로도 작용한다는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말도 예외는 아니다. 말과 글의 예리함을 통제하지 못하면 결국 부메랑이 돼 자신을 망가뜨린다.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어떤 소설가의 말처럼 말은 귀소본능을 갖고 있어서 연어처럼 시대 조류를 거슬러 싸우는 힘도 있지만 말이 출발한 고향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그러니 입 밖에 나온 말은 결국 돌고 돌아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법이다. 마음에서 만들어진 말은 고유의 향과 풍미를 발하다가 결국 말의 고향인 그 사람을 찾아온다.

말 때문에 흥하고 말 때문에 망하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다. 매일 신문과 TV에서 만나는 사건 사고를 보면 대부분 ‘말’이 문제다. 말은 사람과 세상을 살리기도 하지만 자신과 세상을 죽이기도 한다. 자기가 하는 말도 중요하지만 다른 이의 말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말의 예절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도 한다. 제 할 말만 쏟아내고 남의 말은 귓등으로 듣는다든지, 자기 생각과 조금 다르다 싶으면 얼굴 붉히고 언성 높이는 이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의 존재는 딱 그만큼이라고 보면 된다.

책을 읽는다는 것도 다르지 않다. 궁극적으로 책이나 글을 읽는다는 건 글쓴이의 생각과 마음을 읽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나’를 읽는 것이다. 그러니 글에 쟁여진 지은이의 마음에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는 것이 책을 잘 읽는 방법이다. “내가 성경을 읽은 것이 아니라 성경이 나를 읽고 있었다”라는 유명한 말을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남긴 적이 있다. 이 말을 굳이 계시가 어떠니 신학이 어떠니 하며 멀리 끌고 갈 필요 없다. 루터의 말은 아주 단순하다. 성경을 읽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글을 쓰고 설교했던 모든 말이 결국 자기 자신에게 돌아왔고 그것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았다는 뜻이다.

사물의 형태에 따라 그림자도 바뀐다. 굽은 저울의 그림자는 굽어 있고 굽은 사람의 그림자도 굽어 있다. 말도 사람 마음의 그림자다. 그러니 곧은 사람의 말은 곧아 있고 그 말은 다시 곧은 사람에게로 돌아간다. 사람의 언품(言品)이 곧 인품이다. 언품이 바닥을 기어다니는 분들은 결국 인품도 바닥을 기어다닐 것이고, 언품이 따뜻하고 신뢰 있는 분들은 따뜻한 신뢰를 받게 될 것이다. 떠벌이나 말쟁이가 아니라 언품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나한테 하는 말이다.

최주훈 목사(중앙루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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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더미션(https://www.themissi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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